제주 CBS

봄볕이 좋아 꿩의바람꽃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특히 꿩의바람꽃은 햇빛에 민감하기 때문에 볕이 좋은 날을 골라야 합니다. 오름에는 봄꽃들이 이제 절정인 듯합니다. 현호색이 꽃대를 올리기 시작했고 노루귀는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끝물인 변산바람꽃 주위에는 꿩의바람꽃도 피기 시작했습니다. 꿩의바람꽃은 군락을 이루며 피는데 제주에서는 대부분 한개체씩 띄엄띄엄 피고 있습니다.

예전 꽃잎을 열지 않은 것을 보고 아직 꽃이 필 시기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며칠 동안 매일 오름을 찾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야생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할 무렵이어서 식물의 생태에 대한 지식은 없었고 단지 꽃을 보는 즐거움만 알았을 때의 일입니다. 꿩의바람꽃이 빛이 없으면 꽃잎을 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오늘도 오후 2시인데도 꽃잎을 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다시 보러 올 시간이 마땅치도 않거니와 대부분의 봄꽃들이 그렇듯 꿩의바람꽃도 꽃이 피는 기간이 짧아 그 시기를 놓치면 일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꿩의바람꽃은 전국의 숲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국내에 자생하는 다른 바람꽃 종류들처럼 북방계 식물이지만 제주에서도 자생합니다. 바람이 살짝 불어오고 햇빛이 잘 드는 계곡의 사면에서 많이 보이는데 줄기는 곧게 서고 잎은 꽃이 진 후에 뿌리에서 길게 올라옵니다. 꽃은 제주에서는 육지와 달리 3월 중순이면 피기 시작합니다. 꽃자루 하나가 길게 올라와 끝에 한송이 꽃이 달립니다. 꿩의바람꽃도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꽃받침입니다. 꽃받침은 8~13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흰 바탕에 은은한 자주빛이 돕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꽃은 수술까지 흰색이어서 영락없이 흰꽃입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순백의 아름다운 꽃을 이야기 할 때 꿩의바람꽃이 으뜸입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자연의 현상을 이용해서 농사에 적용하기도 했고 생활에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목련꽃이 피면 못자리를 준비하고 목련꽃이 지면 파종을 했습니다. 꿩의바람꽃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달걀은 귀중한 먹거리였습니다. 달걀말이 하나면 학생들의 도시락 반찬은 충분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봄철에는 병아리를 부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달걀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 달걀을 대신했던 것이 꿩알이었습니다.

꿩의바람꽃이 꽃대를 올리면 꿩이 바람을 피우는 시기가 되었고 열흘 정도 더 있으면 꿩들이 알을 낳는다는 사실을 우리 선조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수꿩은 암꿩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움을 하고 승리한 수꿩은 암꿩과 짝짓기를 합니다. 암꿩이 알을 낳고 품기 시작할 때를 맞춰 수꿩은 둥지 반대편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울기 시작합니다. 천적들을 유인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눈에 꿩이 우는 반대편으로 가서 알을 찾아냈습니다. 꿩은 한번에 20여개의 알을 낳는데 집으로 가져오면 달걀을 대신할 먹거리가 되었습니다. 꿩의바람꽃이 생활에 중요한 정보원이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꿩의바람꽃이라는 이름도 꿩과 관련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꽃받침잎이 활짝 필 때 꿩의 깃털을 닮았다. 줄기가 꿩의 다리를 닮았다. 꽃이 필 때 마치 꿩이 앉아있는 모습을 닮았다. 꽃이 수꿩의 꽁지깃을 활짝 핀 것을 닮았다. 꽃봉오리는 오무려 있고 잎은 땅속에서 나올 때 돌돌말려 있어 꿩의 발모양과 닮았다.’ 등 몇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추측일 뿐 근거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꿩의바람꽃은 꽃을 보는 순간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겨울의 입김이 남아있고 땅이 풀리지 않은 시기여서 날씨에 민감한 꿩의바람꽃은 쉽게 속내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봄볕 따스한 날 꿩의바람꽃과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이유로 봄이 되면 가장 기다려지는 꽃 가운데 하나가 꿩의바람꽃이 아닐까 싶습니다.